나는 행복하기에는 ……
나는 행복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기질을 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극단으로 치닫는 성향을 가진 것 같다.
마치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말이다.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고 싶지만
태양의 열기로 인래 날개를 고정시키던 밀랍이 녹아
결국에는 에게해에 빠져 죽은 이카로스.
그렇게 끝까지 극단으로 치닫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근데 본질적으로 그러하지 못한다.
순수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 불가함이 당연한 건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가 않다.
정확히는
그 극단 말고는 달리 행복할 방법을 아직 못 찾은 것일 수도 있다.
요새는 운동을 하면서 다른 후천적 기질을 키우고 있다.
끝을 파헤치고 극단을 보고자 하는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아야
행복한 줄 알았던 어리석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찾아 주고자 한다.
운동은 훌륭한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생각없이 웃으며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고 있다.
생각보다 나는 잘 웃는 사람이었다.
웃음은 그 메마른 시간들에 생기를 주는 것 같았다.
나의 웃음으로 누군가는 안도도 하고
관계의 윤활유적인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웃는다는 것은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일단 찾은 방법은
운동하기
웃기
극단으로 치닫고 싶지만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시계추 처럼
어떠한 감정이든 무엇이든
상승기가 있으면 하강기가 있고
상승기든 하강기든
행복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살아있어 생기는 작용 같으니까.
살고자 하는 의지가 말들어 내는 욕망이
곧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삶의 즐길 수 없게 하는 것 같다.
끝에는 실패로 끝난 나의 자살시도 또한 그러했다.
그토록 원하는 삶이 있었기에
그것을 이루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증오심에
자살을 시도했었다.
오히려 나는 지극히도 삶을 열망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순수하게 말이다.
순수하기 오로지 그것만을 원한다는 것은.
위험한 감정같기도 하다.
다른 어떠한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배타성. 적대성.
그 기준에 나도 해당되었다.
그것에 맞지 않는 나 자신도 나에게서 배타되었고 적대시 되었다.
참,,,
슬펐다.
너무 열망하고 바랐고 아꼈기에
더 증오했고 더 없애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많이도 어리석어서
그러한 감정들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점점 다른 큰 세계를 보고자 한다.
나의 어리석음이 아닌
지혜와 사랑의 빛에 감싸이고자 한다.
나의 그 협소한 어둠에 갇혀
완벽을 지향하느니
밝은 빛 아래
태양의 사랑을 받는
모자란 구석을 드러내는 사람이 더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