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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게감사 2024. 7. 31.

살면 살수록 나는 지금이 좋다.
과거의 모든 선택이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후회하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서 좋다.

십대 때의 나는 꿈이 없었다.
다들 열심히 공부하니까
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하니까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가슴 한켠에는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정말 죽을 것 같이 괴로운데 왜 괴로운 지 몰랐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좋아지는 것은 그 괴로움에도 적응을 한다는 것이다.
사고가 트이고
배움이 늘고
깨달음이 생기고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좁았던 나의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알았던 것들 중
상당수는 진실이 아닌 것들이 많았고
나는 안 겪어도 될 고통을 겪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억울함에 분노도 했었지만
한 번 지나간 고통은 다시는 나를 절망케 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배우게 되었다.
또 한 번 찾아온 절망은 두번 반복해서 나를 괴롭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단단해져 갔다.
나에 대한 궁금증과
나의 괴로움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에 대해 배워온 시간들이었다.

어언 20여년이 지나온 지금 나는 나에 대해서 감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여서 좋다.
나의 개성이 나는 좋다.
나의 생김이 나는 좋다.
말을 듣지 않는 나의 그 고집이 나는 맘에 든다.

앞으로 살면 살수록 나는 더 좋아질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18살의 나에게 얘기를 해줄수 있다면
괜찮다라고 해주고 싶다.
아픈 것도 마음껏
자신을 속이는 것도 마음껏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마음껏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러한 깨달음에는
나에게는 죽음이라는 스승이 있다.
죽음만큼 공평한 것이 있을까?
아무리 재산이 많고
이룬것이 많고
가진것이 많고
유명하고 권력이 있다한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는 모르며
그 어떤 것도 죽음을 막지 못한다는 것에
나는 큰 위로를 느꼈다.

죽음앞에서
삶에 대해 바로 보기 시작했다.
이미 받지도 못한 사랑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할 필요있는가?
나 대신 관에 들어가줄 누군가도 없는데 그들의 인정이 필요한가?
소망하는 것에 그 무엇이간대
나보다 귀할 수 있으며 그것이 나의 죽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결핍의 고통은 단지 삶의 활력일 뿐이고
충족은 고통은 권태로 또다른 괴로움일 뿐이다.
그러한 고통의 진자운동을 끝내 줄 것은 오로지 죽음 뿐일진데
그 죽음이 선사하는
삶을 만끽하며 살면 그만이다.

그 삶속에서 알아야 할 것은 단 하나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말이다.